광주국제영어마을

   고전읽기:꽃들에게 희망을
 
 : gjvillage  : 253 : 16-01-20 07:25:10  

꽃들에게 희망을

- 질적 변화의 변증법: 애벌레에서 나비로-


트리나 폴러스 저작 꽃들에게 희망을은 호랑 애벌레와 노랑 애벌레의 변화를 통해서 인생의 의미와 본질에 대해 다시금 성찰케 한다. 인생은 무엇인가? 물론 인생에 대해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인생의 경험이 다르며, 삶의 굴곡과 마디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은 이것이다.’라고 정의하는 것은 다른 인생에 대한 또 다른 폭력을 가져올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생을 정의할 수 없는가? 아니다.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자신의 삶의 지평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지평이해는 또 다른 지평이해를 전제해야 한다. 즉 다른 사람의 삶의 자리에서 정의되는 인생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인생은 끊임없이 재해석되어야할 주제이다. 인생은 자연과학처럼 하나의 원리로 정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에 관한 학문이라 할 수 있는 인문학은 인생의 해석과 재해석 위에 성립한다고 말 할 수 있다. 호랑 애벌레에게 인생에 대한 반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호랑 애벌레는 이곳 저곳 나뭇잎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호랑 애벌레는 먹는 일을 멈추고 생각에 빠졌다. 그저 먹고 자라기만 하는 인생이 무가치함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에게 반문한다. 그저 먹고 자라는 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닐 거야 이런 삶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게 분명해.”

즉 호랑 애벌레의 존재 자각이 시작된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을 넘어선 또 다른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가? 그는 반문했다. 그런 그에게 높이 올라가는 것이 성공이고, 가치 있는 것으로 등장한다. 그는 기둥을 만들며 올라가는 애벌레 때들을 만나게 되고, 그 무리들 속에 자신을 던지며 높이 오르고자 한다. 거기에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다. 그래 내가 찾으려는 것이 어쩌면 저곳에 있을지도 몰라.” 하며 그는 또 다른 비약을 시도한다.

     

많은 애벌레들이 올라가고 있지만 그 누구도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무언가 있을 것이다. 하는 환상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도 묻지 않고 서로를 밟으며 높이 올라가고자 한다. 경쟁의 구도 속으로 들어간 호랑 애벌레는 상대를 밟고 올라가느냐 아니면 자신이 다른 애벌레들 발밑에 깔리느냐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이제 그에게는 오로지 올라가는 길만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는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는 길목에서 노랑 애벌레를 만났다.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그녀를 사랑했고, 서로를 끌어안으며 땅으로 내려왔다. 둘이 있어서 행복했다. 그러나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자신 안에 숨 쉬고 있는 욕망 때문이다.


호랑 애벌레에게 또 다시 이런 생각이 찾아왔다.


이게 삶의 전부는 아닐 거야 무언가가 더 있는 게 분명해.”


그에게 함께 있어서 행복했던 노랑 애벌레는 더 이상 그의 인생의 중심이 되지 못했다. 그 안에 또 다른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것, 많은 애벌레들이 찾고자 올라가는 그 꼭대기를 다시금 향하고 싶어졌다. 호랑 애벌레의 이런 욕망은 노랑 애벌레와의 이별을 가져왔다.



호랑 애벌레에게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그에게는 끊임없이 올라가는 것이다. 그 정상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는 올라가고 싶었다. 그를 움직이게 하는 욕망은 그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했다. 자기 안에 소중한 것 보다, 자기 밖에 있는 것이 더욱 그를 충동질 했다. 즉 호랑 애벌레는 보이는 것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래서 그는 올라가고 싶었고, 더 높이 올라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인생에 질적인 비약은 없었다. 질적 비약은 자기 부정을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높이 올라가고자만 했던 호랑 애벌레는 자기 성찰이 요구된 자기 부정의 단계에 접어들지 못했다.

 

그러면 혼자 남은 노랑 애벌레는 어떠한가?

그는 고독했지만, 그에게 소중한 만남이 찾아왔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남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불행을 가져다주는 비극적인 만남도 있지만, 인생의 질적 비약을 가져다주는 행복한 만남도 있다. 만남은 나와 너, 당신과 나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시킨다. 노랑 애벌레에게 늙은 애벌레와의 만남은 질적 변화의 시작을 가져다주었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내 안에 나비가 있는 것을 몰랐지요.


 늙은 애벌레와의 만남 속에서 노랑 애벌레는 자기 안에 감추어진 또 다른 자아를 만나게 된다. ‘즉자적(an sich) 에서 대자적(fur sich) 으로 나가는 단초가 된 것이다. 그냥 그대로의 삶에서 타자를 향한 삶으로 나가는 것이다. 삶의 변증은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변증법의 시작은 무엇인가?

자기부정이다. 즉자적인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데서 시작한다. 늙은 애벌레는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나비가 되기 위해서 먼저 자신을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노랑 애벌레는 늙은 애벌레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나비가 되죠?”

날기를 간절히 원해야 돼, 하나의 애벌레로 사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간절하게” “죽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노랑 애벌레는 물었다. 이런 노랑 애벌레의 물음에 늙은 애벌레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겉모습은 죽은 듯이 보여도 참 모습은 여전히 살아 있단다. 삶의 모습은 바뀌지만 목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야.”

 

삶의 질적 변화는 속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내 안의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껍질을 부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겉모습을 벗어 던지지 않고는 속사람으로 새롭게 변화될 수 없다. 그런데 속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에는 고치 상태가 요구된다. 애벌레는 곧바로 나비가 되지 못한다. 자신을 감추고 자신의 껍질을 벗겨내는 고치 상태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 기간은 고통의 시간이며, 암흑의 시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는 반드시 고치의 시간이 요구된다. 고치의 시간에 자신이 성숙되며, 보다 큰 세상을 향해 날아갈 수 있는 자아가 형성된다.

 

애벌레가 고치가 되어서 나비가 되는 과정은 일종의 변증법적 과정이다. 즉 정(These), (anti-these), (syn-these)의 변화 단계다. 애벌레가 애벌레로 있으면 질적 변화를 이룰 수 없다. 자기 그대로, 즉자의 단계라 할 수 있는 애벌레에서, 대자의 단계로 곧 고치의 단계로 변화되어야 한다. 애벌레의 단계는 테제, 대자적 관계라 할 수 있는 고치의 단계로 가야 한다. 그 단계를 지나서 의 단계라 할 수 있는 즉자 대자적관계인 나비의 단계에 이를 수 있다. ‘나비의 단계’, 즉 변증법적 합의 단계에 이를 때 삶의 질적 변화가 완성된다. 트리나 폴러스는 나비의 단계가 되어야 우리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늙은 애벌레가 노랑 애벌레에게 한 말을 들어보자.

 

일단 나비가 되면, 너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어.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사랑을 말이다. 그런 사랑은 서로 껴안는 게 고작인 애벌레들의 사랑보다 훨씬 좋은 것이란다.”

 

그렇다. 나비는 많은 꽃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그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고, 함께 하는 기쁨을 줄 수도 있다. 나비가 되는 인생은 세상에 희망을 주는 삶이다. 작가는 애벌레에서 고치 그리고 나비로의 변화과정을 통해서 우리 삶에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전하고 있다. 고작 서로를 껴안는 것을 넘어서 새 생명을 주는 사랑말이다. 작가는 그 새로운 시작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변증법적 인생의 질적 비약이 무엇인지를 … 

<<함께 생각해볼 문제>>

1. 나는 호랑 애벌레 인가? 노랑 애벌레 인가?

2. 나에게 고치 상태가 있었는가?

3. 왜 인생에는 고치 상태가 필요한가?

list
고전읽기:어린왕자(쌩텍쥐페리)1
영화읽기:우리들의 행복한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