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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인문학: 까뮈 시지프 신화
 
 : gjvillage  : 43 : 19-03-11 04:57:23  

까뮈『시지프 신화』(1)

- 부조리의 감수성-

 

                                   

 

 

 

   

  • 시지프는 고대 코린토스 왕국의 시조이다. 그는 영리했으며, 욕심이 많고 남을 속이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신의 형벌을 받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 날 시지프는 제우스가 독수리로 둔갑해 요정 아이기나를 납치해 가는 현장을 목격한다. 시지프는 아이기나의 아버지 아소포스를 찾아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면, 딸이 있는 곳을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당시 시지프가 건설한 코린토스에는 물이 아주 부족했다. 그래서 그는 아소포스에게 산에 마르지 않는 샘을 만들어주라고 제안한다. 오로지 딸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아소포스는 시지프의 청을 들어주고, 시지프는 아이기나가 납치당한 섬의 위치를 알려준다. 아소포스는 그곳에 가서 딸을 제우스에게서 구해낸다.

 

  •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시지프가 고해바친 것임을 안 제우스는 죽음의 사자 타나토스를 보내서 그를 잡아오도록 한다. 시지프는 제우스의 복수를 예감하고, 타나토스가 오자 그를 쇠사슬로 묶어 감옥에 가두어버린다. 저승의 지배자인 하데스가 이 사실을 알고, 제우스에 알렸고, 제우스는 전쟁의 신 아레스를 보내서 타나토스를 구출한다. 시지프는 전쟁의 신인 아레스와 싸웠다간 코린토스가 피바다가 될 것임을 알고 항복하고 타나토스에게 끌려간다.

 

  • 그러나 이때에도 시지프는 꾀를 발휘하여 자신의 아내 멜로페에게 자신의 시신을 화장도 매장도 하지 말고 광장에 내다 버리라고 말한다. 저승에 당도한 시지프는 하데스에게 자신의 아내가 죽은 자의 장례로 치르지 않으며, 지금까지의 관습을 조롱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것은 마치 저승의 왕인 하데스를 능멸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 아내의 죄를 물을 수 있게 사흘간의 시간을 주라고 한다.

 

  • 하데스는 시지프의 꾀에 넘어가서 그를 다시 이승으로 보내나, 시지프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그래서 하데스는 몇 번이고 타나토스를 보내어 데려오려고 했지만, 그가 갖가지 임기응변으로 그 자리를 피한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이 지혜롭다 해도 신을 이길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하데스 앞에 다시 끌려오게 되고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높은 바위산 기슭에 있는 큰 바위를 산 꼭대기에 올려놓으라는 명령이다. 시지프의 형벌은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가 온 힘을 다해 바위를 산꼭대기에 밀어 올려놓으면, 그 바위는 잠시도 그 자리에 있지 못하고, 그 무게 때문에 다시 지상으로 굴러 떨어져 버린다. 시지프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 바위를 굴리기 시작한다. 이것이 시지프의 삶이며 역사이다.

 

  • 그러나 여기에 ‘부조리’가 있다. 바위는 결코 산꼭대기에 머물 수 없다. 그렇지만 그는 반복적으로 그 일을 해야만 한다. 그에게 바위는 영겁의 형벌인 것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현대를 사는 인간의 모습이다. 현대인은 부조리하지만, 그 부조리를 부둥켜안고 살아야 한다. 자살, 희망으로 도피가 아니라, 부조리에 반항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까뮈에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1. 부조리와 한계상황

 

  • 사람이 스스로 인생을 정의할 수 있을까? 사람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정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람은 스스로의 삶을 정의하고 싶어 한다. 삶의 관한 다양한 정의들을 크게 두 가지로 범주화할 수 있다. ‘낙관적 인생관’ 혹은 ‘비관적 인생관’이다. 그러면 인생에 관한 제3의 정의는 없는가? 그에 관한 해답은 까뮈는 부조리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에게 인생은 온통 부조리이다. 부조리에 대한 우리말의 의미는 이치나 도리에 맞지 않음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앞뒤가 맞지 않을 때 우리는 부조리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부조리는 대리항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 즉 앞뒤의 관계 속에 부조리가 존재한다. 세상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관계 속에서 부조리가 생성된다.  

 

  • 알베르트 까뮈는 불합리한 세계 속에 존재한 인간의 절망적인 한계상황을 부조리라 정의하고 있다. 물론 까뮈 이전에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K Jaspers)가 인간의 ‘한계 상황’(Grenzsituation)에 대해 언급한바 있다. ‘한계상황’은 인간이 그 앞에 섰을 때 좌절할 수밖에 없는 벽과 같은 것으로 칼 야스퍼스는 죽음, 고통, 투쟁, 죄책 등을 제시하고 있다. 칼 야스퍼스는 사람이 한계상황에 직면하여 좌절과 절망을 인식하고, 동시에 그것을 계기로 ‘포괄자’로 나아가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포괄자는 무엇인가? 절대자, 초월자이며 곧 신이다. 이것이 칼 야스퍼스의 실존주의 철학의 근간이 되고 있다.

 

  • 그러나 알베르트 까뮈는 세계가 온통 부조리임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굴복하지 않고 반항한다. 그래서 그에게 시지프는 위대한 영웅이다. 부조리에 굴복하지 않고, 그 부조리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반항적인 인간을 그는 현대가 필요한 실존상으로 그려내고 있다.

2. 부조리와 자살

 

  • 시지프 신화의 출발은 ‘자살’이다. 그는 ‘자살’을 수없이 꿈꾸어왔다. 오늘날 한국은 자살의 시대이다.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이다. 자살만이 부조리를 벗어날 탈출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수없이 자살을 꿈꾸어왔던 까뮈는 자살은 결코 부조리의 해결책이 아님을 선언하고 있다. 그에게 진지한 철학적 물음이 있다. 그것은 자살이다. 자살은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까뮈는 이 질문이 ‘우리 삶의 가장 절박한 물음’이라 말한다.

 

  • 까뮈는 자살의 문제를 사회적 현상으로 취급하기보다는 개인의 삶의 영역 속에서 파헤친다. 곧 개인의 생각과 자살 사이의 관계에 접근한다. 그는 자살을 ‘준비된 행위’로 보고 있다.

자살이라는 행위는 마치 위대한 작품이 만들어질 때처럼 마음속이 고요해진 가운데 준비되는 것이다. 당사자 자신도 그렇게 될 줄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 문득 방아쇠를 당기거나 물속으로 몸을 던지지는 것이다. 어느 부동산 관리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자 사람들이 어느 날 내게 말하기를 그가 5년 전에 딸을 잃은 다음부터 사람이 많이 변했고, 그야말로 그 일 때문에 아예 ‘골병이 들었었다’ 고 했다. (17쪽)

 

  • 까뮈는 이 예를 제시하면서 그가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이 침식당했다는 것이다. 마음속에 골병이 들기 시작하여 그 자살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까뮈는 준비된 자살을 “벌레는 이미 사람의 마음속에 박혀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자살이라는 벌레가 이미 그 사람 안에 박혀버린 것이다. 그 벌레가 바로 자살의 이유이다. 자살은 허무의 감정이 마음속에 찾아올 때 생긴다. 그러나 이율배반의 감정도 존재한다. 그 내면에 허무가 찾아왔으나, 자살로까지는 진전되지 않는 경우이다. 까뮈는 여기서 더 이상 논제를 진전시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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