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국제영어마을

   고전읽기:오세암(정채봉)
 
 : gjvillage  : 185 : 16-09-06 09:09:03  


광주국제영어마을(GIEV)

인문학강의(여섯 번째 시간)

『오세암』

- 길손의 노스탤지어-


‘노스탤지어’란 단어에는 ‘노스토스’라는 ‘귀향’이란 뜻과 ‘괴롭다’라는 ‘아르고스’가 결합되어 있다. 즉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그로 생긴 시름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노스탤지어’라는 말에는 ‘영원한 안식으로 귀환 하려는 노력과 아픔이 있다는 말’이다. 만일 이 세상이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과 위안을 줄 수 없다면, 우리 모두 귀향의 병으로 시름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노스탤지어의 아픔에 놓인 것이다. 그러므로 길손의 아픔과 그리움은 우리 모두의 아픔과 그리움이다.


정채봉의 동화 『오세암』이 불교 설화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오늘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길손’이다. 길손은 우리의 또 다른 이름이며 부유하는 기호이다. 이 세상에서 안주하지 못하고, 노스탤지어를 향해서 떠도는 길손이 바로 우리이다.


우리의 고향인 엄마는 어디에 존재하는 것인가? 길손은 바람이 시작되는 곳에 엄마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바람은 느낄 수 있다. 바람이 우리의 피부를 스칠 때, 바람은 자신의 존재를 나타낸다. 바람은 보이지는 않지만, 항상 자신의 손자국과 발자국을 우리에게 남긴다.


그러나 길손에게 바람은 엄마와 같다. 그래서 그는 항상 바람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바람을 보기 위해선 우리의 마음의 눈이 먼저 열려야 한다. 마음의 창문이 하나 둘씩 열릴 때, 노스탤지어가 우리 안에 안주하게 된다. 바람, 노스탤지어의 시작을 찾아서 길손은 설정스님과 관음암을 향한다. 그곳에서 길손은 또 다른 엄마를 만난다. 그를 바라보며 ‘살며시 웃는 얼굴’을 만난다. 그런데 그 엄마는 문둥병이 걸린 스님이 묵고 있다가 죽은 방에 있다. 길손은 엄마가 왜 이런 곳에 있는가? 묻지 않는다. 단지 관음보살이 좋다. 문둥병,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고 무섭지만, 그곳에서 엄마를 만난다.


길손은 벽에 걸린 관세음보살의 그림을 보고 대화를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전 길손이에요.”

“내일 또 놀러 올게요, 안녕!” 하며 친구가 된다.


길손은 그림 속의 관세음보살 앞에서 온갖 재롱을 다 부린다. 스님 흉내도 내보고, 토끼처럼 깡충거리기도 해보고, 방귀로 뀌어본다. 그러나 그분은 마냥 소리 없이 웃기만 한다. 그림 속의 보살님이 이제는 엄마처럼 다가왔다.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나는 엄마가 없어요. 엄마 얼굴도 모르는걸요. 정말이어요. 내 소원을 말할게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요. 약속하지요? 내 소원은 …… 내소원은…… 저…… 엄마를…… 엄마를 가지는 거예요. 저 …… 엄……마…… 엄마……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길손에게 그림 속의 보살님은 엄마가 되었다. 그는 날마다 보살님께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전했다. 설정스님이 마을로 장을 보기 위해서 떠나고 홀로 남은 길손에게 유일한 동반자는 그림 속의 보살이었다. 배고픔과 추위가 길손에게 찾아왔지만, 그에게 더 이상 ‘아르고스’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 엄마를 향한 그리움의 아픔은 사라졌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르고스’로부터 자유함을 누릴 수 있을까? 오세암은 아르고스로부터의 자유함을 길손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신비한 여인은 길손을 가만히 품에 안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어린 아이는 곧 하늘의 모습이다. 티끌 하나만큼도 더 얹히지 않았고 덜하지도 않았다. 오직 변하지 않는 그대로 나를 불렀으며 나뉘지 않는 마음으로 나를 찾았다.…(중략)… 꽃이 피면 꽃 아이가 되어 꽃과 대화를 나누고, 바람이 불면 바람아이가 되어 바람과 숨을 나누었다. 과연 이 어린아이보다 진실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이 아이는 이제 부처님이 되었다.”


이 아이가 부처다. 이 어린아이보다 진실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 하는 말은 어린이와 같이 않으면 천국이 들어갈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만이 아르고스의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아르고스, 그 아르고스의 아픔은 어린아이가 되기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 어린아이는 모든 대상과 대화를 할 수 있다. 이미 우리가 읽고 배웠던 어린왕자처럼 말이다. 그 순수함이 사물과 자연과 그리고 사람과의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다시금 이런 물음을 던질 수 있다. 길손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주는 노스탤지어는 무엇인가? 고향을 향한 아픔.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동안 결코 치유할 수 없는 ‘트라우마’(trauma)다. 모태에서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우리는 노스탤지어를 향한 아픔 속에서 살아간다. 즉 이 세상은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 아니다. 단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한 노스탤지어를 향한 순례자인 뿐이다.


<함께 생각해볼 문제>

1. 관세음보살과 엄마가 상징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2. 오세암이 주는 노스탤지어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

3. 길손이 주는 기호학적 의미는?

4. 바람을 보는 마음의 창은 어떻게 열어지는가?

5. 설정 스님의 역할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list
고전읽기:김동인 [감자]
고전읽기:아낌없이 주는 나무(쉘 실버스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