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국제영어마을

   고전읽기:아낌없이 주는 나무(쉘 실버스타인)
 
 : gjvillage  : 283 : 16-09-06 08:4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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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강의(네 번째 시간)

아낌없이 주는 나무

- 나를 넘어서 타자를 위한 존재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의 저자 쉘 실버스타인(1932-1999)은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는 작가이며 일러스트레이터, 시인, 음악가 등 폭넓은 예술 활동을 했던 사람이다. 그가 쓴 책들에 등장한 그림은 활자매체가 전하는 메시지의 한계를 넘어서 더욱 진한 감동으로 내용을 전하고 있다.


먼저 표지 이미지를 살펴보자. 큰 나무는 자신을 낮추며 소년을 향하고 있고, 그 나무에서 빨간 사과 하나가 떨어지고 있다. 소년은 그 사과를 받기 위해서 손을 벌리고 있다. 나무줄기에 저자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라 기록하고 있다. 소년과 나무와의 관계에 대한 해석의 경계를 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는 소년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준다는 기호학적 표시를 한 것이다.


이미지와 문자는 긴장관계에 있다. 문자가 없이 이미지만 있으면, 그 이미지는 바라보는 자에 따라 무한한 해석의 지평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 이미지들 사이에 문자가 기록되면 이미지의 확장은 그 문자의 경계 내에 멈춰 선다. 그래서 때론 문자가 이미지의 자유로운 해석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활자매체를 통해서 기록된 작품들을 읽을 때 우리는 다양한 상상력의 나래를 펼 수 있다. 작가가 글로 한 폭의 수채화처럼 풍경을 묘사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작품을 읽을 때 마다 또 다른 표상들을 그려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글로 표현된 작품은 독자의 상황에 따라 다른 이미지를 제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만일 저자가 수채화 같은 풍경을 글로 표현하고 그 옆에 본인이 그린 그림을 그려 놓는다면, 더 이상 이미지의 확장은 멈추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미지와 문자의 긴장관계이다.


독자가 보기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문자와 이미지의 긴장관계를 넘어서고 있다. 짧은 대사와 말을 이미지가 보충하고, 이미지의 한계를 말이 보충하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더욱 감동적이다.


소설의 시작은

“옛날에 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Once there was a tree…)”로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오른 쪽 편에 나뭇잎이 무성한 한 그루의 나무가 높이 솟아나 있다. 그런데 그 나무는 어린 소년을 사랑하였습니다. (and she loved a little boy).


이 두 번째 장면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소년의 모습이 온전하게 그려지지 않았고, 단지 소년의 짧은 오른 쪽 다리만 그려져 있다. 작가는 소년의 모습을 아직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나무는 이미 그 소년을 향하여 자신의 몸을 펼치고 있다. 그렇다. 그 사람의 전체를 알지 못할지라도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우리의 몸 전체가 그곳을 향하게 된다. 몸은 의식 이전에 사랑하는 자를 향하도록 되어있다. 나무는 자신이 사랑하는 소년을 향하여 자신을 낮추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페이지에 나무를 향해 달려오는 소년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나무도 사람처럼 두 팔을 벌리며 그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를 향해 몸이 춤추고 있는 것이다. 소년은 날마다 나무에게로 와서 떨어지는 나뭇잎을 주워 모아서 왕관을 만들어 쓰고 놀았다. 나무에게 소년은 이제 왕이 되었다. 소년은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서 매달려 그네를 뛰기 시작했다. 나무가 소년의 놀이터가 된 것이다. 배가 고프면 사과도 따 먹고 놀았다. 그러다 피곤하면 소년은 나무 그늘에서 단잠을 자기도 했다.


서로가 길들여지면서 소년도 나무를 사랑했고, 나무도 소년을 사랑했다. 나무의 마음에 사랑이라는 Heart가 새겨졌다. 하트는 심장이며, 생명이다. 즉 사랑은 내 심장을 주는 것임을 말한다. 작가는 그 기호학적 코드를 나무줄기에 새겼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다. 나무줄기에 하트가 두 개가 새겨지고,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두 사람이 나무에 누워있다. 니키 말고 또 다른 사람은 누구인가? 니키의 연인인가? 알 수 없다. 혹시 누구 아신 분은 말씀하세요?)


---- 하지만 시간은 흘렀습니다.(But time went by)

---- 그리고 소년도 점점 나이가 들어갔습니다.(and the boy grew older)


나는 이 두 대사에서 또 다른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변했다는 것이다. 누가? 소년이 변한 것이다.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나무는 여전히 그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이 어른이 되면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성년이 된 소년이 다시 나무에게 찾아왔다. 나무에게는 여전히 함께 놀고 사랑을 주었던 소년이었지만, 그는 이미 소년이 아닌 어른이었다. 그에게는 돈이 필요했다. 소년은 옛날 아무 이해 관계없이 사랑했던 나무에게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무는 그 소년의 말에 가슴 아파 하면서 내 몸에 달린 사과를 도시에 가서 팔아서 돈을 만들라고 했다.


그러자 소년은 나무 위로 올라가 사과를 따서 가지고 도시로 떠났다. 소년이 보이지 않았지만, 나무는 행복했다. 주었기 때문에, 아낌없이 주었기 때문에 나무는 행복했다. 그러나 떠나간 소년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무도 슬펐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돌아왔다. 나무는 또 다시 옛날의 소년으로 그를 대하며 함께 놀기를 원했다. 그러나 성년이 되 버린 소년은 집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다시 나무는 자신을 내어주기 시작했다. 내 가지들을 배어다가 집을 지어 그러면 행복할 거야! 말했다. 소년은 사과 나무 가지를 베어가지고 집을 짓기 위해 떠났다. 줄기가 없이 몸통만 남은 나무는 그래도 행복했다. 소년이 행복할 수 있었기에…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 소년은 또 다시 나무를 찾아와 배가 한척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나무는 내 줄기를 베어다가 배를 만들어 그러면 행복해 질 수 있을 거야! 하면서 자신을 또 다시 내어 주었다. 소년은 나무 줄기를 베어 배를 만들어 타고 멀리 떠나 버렸다.

이 다음 페이지에 나오는 대사와 그림이 나에겐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지만……, 정말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And the tree was happy…, but not really)


밑동만 남은 나무는 나무로서의 존재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그는 그늘도 열매도 줄 수 없고 단지 땅에 자신의 뿌리만을 기대고 있을 뿐이다. 자신을 다 내어 주어서 행복했지만, 그는 아팠다. 그러나 나무는 그 아픔조차도 행복으로 받아드렸다.


오랜 세월이 지난 노인이 되어 다시 찾아온 소년에게 이제 나무는 자신의 마지막 남은 것조차도 준다. 나무도 노인이 된 소년에게 “무언가 너에게 주고 싶은데……” 말하며 늙어버린 자신의 밑동을 내민다. ‘편안히 와서 이곳에서 쉬어’ 하면서 말이다.


작가는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습니다.(And the tree was happy)” 라고 전한다.


마지막 장면에 노인이 된 소년이 앉아있는 나무 밑동엔 여전히 사랑한다는 하트 마크가 새겨져 있다. 노인이 된 소년에게 사랑은 사라져버렸지만,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게 사랑은 영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나는 이 작품의 절정이 늙은 나무 밑동에 앉아 있는 소년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어쩜 우리 인생이 죽을 때까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받기만 원하며 살아갈지 모른다.


이 소년의 모습이 나의 노년의 모습이 되지 않길 기도한다. 비록 내가 없어질지라도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새기는 나무가 되고 싶다. 그래서 영원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전하는 나무기호가 되고 싶다.


작가 쉘 실버스타인은 나 중심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나(Ich)를 넘어서 너(Du)를 향한 존재’로 나가기를 권하고 있다. 나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나’(I)는 ‘당신’(You)이 있기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나를 주는 훈련을 해야 한다. 나를 내어 줄 때, 나의 존재는 더욱 풍성해지며 영원해 질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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